제목 윤일상의 가요 Talk 10 #2 이은미편
DATE : 2015.04.19




원본 컬럼 링크: http://ch.yes24.com/Article/View/27343

 

1. 만날 사람은
반드시 만난다
 


 


"정말 물건이 나왔어."


 


흥분한 얼굴로 내게 말하던 형님들이 있었다. 좀처럼 나오기 힘든 목소리와 무대매너를
가진 가수를 발견했다며, 그녀의 폭발적인 성량과 뿜어져 나오는 카리스마에 대해 연신 쏟아내듯 이야기했다.


 


1992년, '기억 속으로'라는 곡으로 대중 앞으로 나서기 몇 년 전. 신촌블루스의
앨범에 참여하며 알려진 이은미라는 이름은 몇 해 동안 언더그라운드를 떠들석하게 만들었다고 한다. 하지만 나는 당시 갓 데뷔한
작곡가인지라 풍문으로 떠도는 이 미스테리한 가수에 대해 그저 막연한 호기심만 가질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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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 나는 대중음악 작곡가로
오버그라운드를 대표하며 성장했고 은미 누나는 '맨발의 디바', '무대 위의 잔다르크', '라이브의 여왕' 이라는 애칭과 함께 라이브
음악계에서 자신의 영역을 굳혀 나가며 각자의 길을 걸어가고 있었다. 좀처럼 만나기 힘들 것 같아 보였던 두 사람이었지만, '만날 사람은 반드시
만난다'는 중국 속담도 있지 않은가? 




2004년 어느날, DJ철이형으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은미 누나가 나를 한번 보고 싶어
한다는 거였다. 두 분의 식사자리에서 대화 도중 자연스럽게 내 얘기가 나온 듯했는데, 누나가 나를 만나고 싶어 한다는 말이 정말 듣기 좋았다.
그렇게 그동안 말로만 들어왔던 은미 누나를 드디어 만났고 그 첫인상은 실로 놀라웠다. 무대를 통해 보여온 강한 이미지 혹은 언론을 통해 접해온
직선적인 언변의 기억 때문이었을까? 은미 누나에게는 지나치게 예민하고 독특할 것 같다는 선입견이 솔직히  있었다.


 


하지만 실제로 만나본 은미 누나는 달랐다. 완벽히 겸손했고 너무나 온화했다. 거기다
음악적인 넓은 포용력까지 실로 기대 이상이었다. 박지윤의 'Steal Away'를 좋아한다며 내 작품에 대한 호감을 표현해 준 은미 누나와의 첫
만남은 마치 예상치 못한 선물을 받은 듯 놀랍고 행복했다. 그렇게 인연은 시작되었고 어느날 전화 한통이 울렸다.


 


2.
애인...있어요


 


누나의 6집 앨범에 함께하자는 연락이 왔다. 어느 라이브바에서 누나를 만났고 누나가
그리고 싶은 앨범에 관한 이야기를 오랫동안 했다. 당시 누나는 여러 가지 일로 마음이 지쳐있었고 여린 감성에 입은 상처는 극으로 항해가고
있었다. 무대를 맨발로 휘젓고 다니는 디바였지만 무대를 내려오면 상처받기 쉬운 여린 여자였고, 나는 그런 인간적이며 자연스러운 누나를 그려내고
싶었다. 모든 사람을 휘잡을 것 같은 외형보다는 마치 조금만 닿아도 상처 날 것 같은 속 살. 그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렇게 은미 누나와의
미팅이 끝나고 돌아오는 길에 몇 곡의 스케치를 그렸고, 그 곡들이 만나 하나의 곡으로 완성되었다.


 


곡이 나왔고, 작사가에게 가사를 맡겨야 하는데, 머릿속엔 오직 한사람만이 떠올랐다. 이
곡을 진심으로 이해해 줄 사람. 나와 몇 곡을 작업한 후 돌연 몇 해 동안 잠적해 있었던 최은하 작가에게 메일을 썼다.


 


'음악을 들어보고 가슴이 움직이면 글을 보내줘.'


 


일주일도 채 되지 않아서 완성된 가사가 왔다.


 


'아직도 넌 혼자인 거니? 물어 오네요. 난 그저 웃어요. 사랑하고 있죠. 사랑하는
사람 있어요.'


 


좋은 글 때문이었을까? 은미 누나와 나는 몰입해서 녹음을 했고 실로 몇번의 Take만에
'애인...있어요'는 완성되었다. 그리고 세상 밖으로 나간 6집 Ma non tanto. 당시 모 유명 음악평론가는 나에게 "왜
'애인있어요'같은 곡을 이은미에게 줬냐? 왜 '보고 싶다'같은 곡을 주지 않았냐?"고 이야기했다. 그때 나는 '보고싶다'는 김범수의 노래이고
'애인있어요'는 이은미의 노래니까요.'라고 답했다.


 


'애인있어요'는 발표한 지 3년 뒤인 2008년 드라마 '내 생애 마지막 스캔들'에
실리면서 다시 재조명을 받았다. 그 후로 수 년 간 노래방 애창곡 1위를 하며 긴 수명을 이어갔고, 지금까지도 많은 대중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다.


 


그리고 보게 된 누나의 첫 콘서트.


 


누나의 라이브는 그 전에도 본 적이 있었지만 짧은 행사였고, '애인있어요' 발표 이후에
비로소 단독 콘서트를 처음 보게 되었다. 수없이 많은 공연을 봤고 직접 연출도 해왔던 나였지만 은미 누나의 콘서트는 그야말로 이은미 아니면 안
되는 이은미만의 공연이었다. 무대 위는 오직 이은미만이 보였고 터져나오는 목소리는 심장을 내리쳤다. 그 감동은 말로 표현하기엔 한없이 부족할
뿐이다. 정말 누나의 공연은 직접 귀로 듣고, 눈으로 봐야만 한다. 


 


여담으로, 평소 가수 이은미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던 친한 누나 한 분을 일부러 은미
누나의 공연에 모시고 갔는데 공연을 다 보신 후 얼굴이 빨개져서 흥분하며 "뭐 저런 가수가 다 있냐!!!"며 크게 감동을 받으셨고, 그때부터
가수 이은미의 팬이 된 후, 두 분은 지금까지도 절친한 사이로 지내고 계신다. 


 


어쨌든 그렇게 시작된 은미 누나와의 음악 인연은 다음앨범 '소리위를 걷다'에서도
이어졌다. 드라마도 시리즈가 있듯 이은미 앨범에도 시리즈가 있다. '애인있어요' 속의 여자 이야기는 다음 앨범에서 '헤어지는 중입니다', '결혼
안하길 잘했지'로 이어진다. 가사는 계속 최은하 작가가 썼는데 '애인있어요'와 '헤어지는 중입니다', '결혼 안하길 잘했지'의 스토리는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혹시 기회가 된다면 이 곡들을 한번 이어서 들어보길 추천 드린다.


 


3.
Nocturne


 


이상하게 은미 누나의 앨범 발매 시기는 내 인생의 행로의 중요한 시점과 비슷한 부분이
많다. 내 인생을 송두리 채 바꿔버린 여인인 현재 내 아내를 만나 그것에 대한 영감으로 곡이 하나 만들어졌고, 그 곡이 바로
Nocturne이었다. 가사가 슬픈 느낌으로 채워지긴 했지만 원래 이 곡을 쓸 때 나의 느낌은 '사랑의 찬가'를 만들자였다. 실제로 이 곡을
아내에게 처음으로 들려 준 날 첫키스를 하기도 했다. 결혼 전 외로움과 슬픔의 정점에서 쓴 곡 '죄인'과 사랑에 대한 찬미를 그린 녹턴은 어찌
보면 은미 누나의 목소리를 통해 세상 밖에 나간 나의 수필 같은 음악이기도 하다.


 


그 후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이란 곡으로 함께 고 노무현대통령을 추모하기도 했고,
나의 쌍둥이 아이들이 태어난 시점에 설레고 들뜬 복합적인 나의 마음을 '가슴이 뛴다'라는 곡에서 누나와 공감하기도 하였다. 이 곡의 원래 제목은
'가슴이 운다'로, 곡을 만들며 가사를 동시에 내가 직접 썼다. 그 후 누나와 함께 가사를 수정해 나가며 '가슴이 뛴다'로 제목과 글의
이미지가 바뀌기도 했다. 누군가의 의견이 곡의 원래 의도와 변환되어 진행되는 경우는 나에겐 좀처럼 있는 일이 아니지만 은미 누나이기에 가능했던
것이고, 그만큼 가수 이은미는 내게 각별한 존재라는 반증이기도 하다.


 


최근 누나와 여러가지 이야기를 나누며 누나와 내가 함께 손잡고 걸었던 길을
되돌아봤는데, 난 아직 갈 길이 먼 것 같이 느껴진다. 더 다양하고 변화무쌍한 이야기를 나누며 음악으로 표현하고 싶고, 드러내지 못했던 누나의
아픔과 기쁨을 고스란히 음악으로 기억되게 하고 싶은 욕심이 크기 때문이다.   


 


11년 동안의 누나와의 음악적 인연이 앞으로 또 어떻게 발전되어지고 펼쳐질지 모르기에
더 기대가 된다. 이렇듯 난 아직 가수 이은미를 생각하면 '가슴이 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