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윤일상의 가요 Talk 10 #5 터보편
DATE : 2015.05.12

원본 컬럼 링크: http://ch.yes24.com/Article/View/27932


토토가에서도 빼놓을 수 없는, 터보

5편 터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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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가 시작 되고 얼마 되지 않아 나의 입에선 탄성이 터져 나왔다. 당시의 댄스뮤직 아이돌들과는 확연히 다른 보컬 실력이었다. 미성으로 아름답게 표현할줄 아는 종국이의 보컬은 감성적인 멜로디라인의 내 댄스음악과 매우 잘 어울렸다. 그런 짜릿한 느낌은 매 작업마다 일어나는 일이 아니기에 ‘Love is’의 믹스 때 차오르던 감격과 전율을 아직도 잊을 수 없다. 

 90년대 중반 댄스음악 시장의 아이돌 그룹 중에는 가창력에 문제가 있는 가수들이 참 많았다. 요즘은 컴퓨터 기반의 레코딩 시스템과 각종 음정 보정 편집툴이 많아서 여러가지 방법으로 제작이 용이하지만 당시는 테이프 레코더로 녹음하던 시절이었으므로 오로지 녹음실에서 가수가 음정이나 박자를 잘 맞춰야 했고, 그만큼 그 과정에서의 집중력을 더욱 필요로 했다. (그렇다고 예전 가수들이 더 노래를 잘 했고 요즘 가수들이 노래를 못 한다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노래방 이후 세대들인 요즘 어린 친구들이 노래하는 경험이 많아서 그런지 평균적인 가창력은 더 우세한 것 같다. 다만 음색이 모두 획일화 된 느낌이 드는 건 아쉬운 부분이다.) 

 

그래서 가창이 약한 가수들과의 작업에서는 어김없이 전문 코러스를 요청하거나 내가 직접 같이 따라부르면서 음을 밑에 까는 형식으로 믹스를 하여 보컬의 약점을 커버하곤 하였다. 댄스 음악의 특성상 외적인 부분이 중요했으므로 가창력보다는 춤이나 비쥬얼적인 부분이 해결되는 친구들을 선호했던 당시 제작자들의 성향이 만들어 낸 현상이었다. 가수라는 직업을 이름 앞에 붙이기에는 다소 어색한, 실력이 한참 모자란 가수들과의 작업이 많을 수밖에 없었고 이로 인해 한창 스트레스를 받고 있던 시절이었다. 


터보.jpg

ⓒ 윤일상홈페이지(http://www.ilsang.com/)

Love is...

 

1995년, 건장한 체구의 두 사내가 '터보' 라는 아주 강력한 이름으로 세상 밖으로 나왔다. 이름과 걸맞게 기존 댄스음악에 비해서 다소 강한 비트의, 그야말로 남성적인 느낌이 강하게 풍기는 그룹이었다. 1집의 약진으로 제법 입에 오르내리던 그들은 다음 해, 2집 앨범의 작업을 위해 나에게 연락을 해왔다.

 

나는 학창시절부터 락 매니아였기에 강한 느낌의 댄스음악을 하는 그들에게 락적인 색채의 옷을 덧입혀 볼 수 있으리란 기대에 흔쾌히 승낙했고 바로 작업에 돌입했다. 그래서 터보의 앨범에 수록된 내 노래들 ‘Love is, 바람의 철학, 금지된 장난, 오버센스, X, 첫사랑’ 등은 락음악 베이스에 디스토션 기타플레이가 많았다. 당시 제작자 형님은 2집 작업이 들어갈 때만 해도 "왜 댄스뮤직에 디스토션기타가 들어가야 되는거야?" 하며 의아해 하더니 Love is의 성공 이후에는 "이번에도 락기타 들어가는 곡 있는거지?"하며 기대감을 나타내곤 했다.

 

‘쿨’이 내 안의 순수함을 끄집어 낼 수 있었던 팀이라면 ‘터보’는 내 속의 강한 락 스피릿과 감성을 덧칠할 수 있는 표현의 장이 되었다. 물론 이 모든 것은 좋은 가수들이 없었다면 불가능 했을 것이다.

 

터보, 김종국과 김정남의 만남은 Bay Studio라는 곳에서 이루어졌다.

 

당시 대부분의 기획사는 마치 스파르타식으로 엄격히 가수들을 통제했다. 그러한 관리방식에 대해서는 호불호가 갈리겠지만, 한창 놀기 좋아하고 끼 많은 아이들을 관리하기 위해서 어느 정도는 필요한 조치가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그 어느 기획사보다 엄격했던 터보의 소속사였던지라 첫 인사 자리에서 잔뜩 군기가 들어 있던 그들이었다. 그 어떤 어려움도 모두 이겨낼 수 있을 것 같은 눈빛은 비장하기까지 했다. 그리고 얼마 후 기타리스트 근형이 형과 기타프레이즈를 만들어 그것을 기반으로 한 곡이 나왔고 첫 보이스 녹음이 드디어 시작 되었다.

 

'와~! 잘한다!'

 

노래가 시작 되고 얼마 되지 않아 나의 입에선 탄성이 터져 나왔다. 당시의 댄스뮤직 아이돌들과는 확연히 다른 보컬 실력이었다. 독특한 보컬 톤은 물론이고 4옥타브 E노트나 F노트까지 무난히 소화하는 가수는 그때나 지금이나 흔하지 않다. 그렇다고 매번 고음에서만 노는 가수가 아니고 중저음 까지도 완벽히 소화했다. 자유로운 음역대에 황홀해하며 곡을 만들었기에 녹음 당일 그것이 실현되는 순간에는 더더욱 기쁨이 컸다. 더구나 음역대가 높다고 샤우트로 지르기만 하는것이 아니라 미성으로 아름답게 표현할줄 아는 종국이의 보컬은 감성적인 멜로디라인의 내 댄스음악과 매우 잘 어울렸다. 그런 짜릿한 느낌은 매 작업마다 일어나는 일이 아니기에 ‘Love is’의 믹스 때 차오르던 감격과 전율을 아직도 잊을 수 없다. 

 

종국이의 보컬실력에 뒤지지 않는 터보의 또 다른 1등 공신은 김정남의 댄스실력이다. 여러 댄스그룹이 안무팀의 안무를 소화하기에 바빴던 것과는 달리, 김정남은 이미 댄스씬에서 실력자로 오르내렸었기에 그들의 무대는 김정남의 주도 하에 늘 가득 찬 느낌을 만들어냈다. 하지만 언제나 밝고 예의 발랐던 타고난 춤꾼 김정남과의 인연은 거기까지였다. 3집 작업이 들어가기 전 김정남의 탈퇴 소식을 들었고 후임은 미국에서 온 마이키였다. 새로운 팀원으로 재정비에 들어간 터보는 다른 멤버에 맞게 새로운 엔진의 음악이 필요했다.

 

그 즈음 난 바쁜 스케쥴과 여러가지 사건사고로 지칠대로 지쳐있었다. 당시 가요차트 10위 안에 내 곡이 7-8곡을 오르내리던 시절이었는데 히트곡이 늘어나면 날수록 그에 질세라 더 많은 구설수에 올랐고, 곡을 받지 못한 사람들로부터의 괴롭힘과 시달림도 당해야했다. 밀리언셀러를 기록하고 매 작품이 연속 히트했지만 두 개의 방송국에서 '한 작곡가의 음악이 너무 많이 나온다.'는 이유로 '윤일상 음악 금지령'이 내려지고 급기야 신문기사까지 났었다. 결국엔 경고조치 정도로 마무리 되었고 실제로 실행되지는 않았지만 이 때문에 급하게 타이틀을 바꾸는 기획자들이 많았다.(일례로 유승준의 1집 타이틀곡은 '사랑해 누나'였지만 이 일 때문에 '가위'로 바뀌게 되었다.)


당시 내 나이는 불과 스물셋이었다. 24시간 음악에만 미쳐 사는 스물셋의 내가 감당하기에는 수많은 주변 일들이 너무나 힘겨웠고 급기야 쓰러지는 일까지 생겼다. 


'이렇게 살다간 정말 죽을 수도 있겠구나...'


나는 모든 스케쥴을 접고 미국으로 떠났다.

 

뉴욕을 거쳐 다다른 올랜도. 함께 간 엔지니어 형님과 차를 하나 빌려서 데이토나비치로 드라이브를 갔다. 끝없이 펼쳐진 모래사장 해안가를 달리는 기분은 그야말로 말로 표현할 수 없이 환상적이었다. 난 차를 세우고 모래사장으로 달려갔다. 입자가 너무도 가는 모래 한가운데 서 있으니 마치 그 속으로 빨려 들어갈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때의 그 곳에서 떠오르는 영감으로 쓴 곡이 있다.

 

회상

 

미국 일정을 마치고 돌아와서 나는 바로 편곡 작업에 들어갔고 작사가 이승호 형님께 데이토나비치에서 곡을 썼던 당시 내 감정을 정리해서 말씀드렸다. 3집이 출시되는 시점이 겨울을 맞이하던 때라 작품의 배경은 겨울이 되었고 보컬 녹음을 하는 날 당일까지 기다리고 기다리다가 받은 글을 읽고 우리는 실로 큰 감동을 받았다.

 

"겨울오면은 우리 둘이서 항상 왔었던 바닷가
시린 바람과 하얀 파도는 예전 그대로였지만
나의 곁에서 재잘거리던 너의 해맑던 그모습
이젠 찾을 수 없게 되었어.
(중략)
보이지 않니
나의 뒤에 숨어서 바람을 피해 잠을 자고 있잖아
따뜻한 햇살 내려 오면 깰거야
조금만 기다려~"

 

수많은 가수들이 리메이크를 했고 아직까지 많은 이들의 기억 속에 남아 있다는 이 곡에는 나의 20대의 추억이 고스란히 들어있다. 그렇게 음악은 작곡가의 삶이 투영돼 세상 밖으로 나가는 게 아닐까 생각한다.

 

X에서 Tonight까지

 

유독 터보는 실제 이야기가 바탕이 되어 만들어진 곡이 많다. 4집을 만들기 전 터보의 제작자 형님과 친하게 지낼 때인데, 사는 곳까지 같은 아파트였기에 거의 매일 만나서 낚시도 하고 술도 마시며 음악 이야기를 나눴다. 그 즈음 홀로 지내던 이 형의 가슴에 사랑하는 사람이 들어왔다. 자연스레 함께 어울려 자리도 하곤 했었는데 그때 형의 애틋한 사랑이야기가 많이 투영되어 4집에 수록된 '기도'라는 곡이 탄생했다. '애인이 생겼어요'라는 곡도 그것의 연장선에 있는 곡이다. 같은 앨범에 있는 X는 일본에 있는 내 친구의 러브스토리로 만들어진 곡이기도 하다.  진정성 있는 스토리가 통해서 였을까? 터보의 4집 역시 많은 인기를 얻으며 성공했다.

 

댄스음악의 황금기는 새로운 세기가 시작되면서 기세가 한풀 꺾였지만 터보는 계속 질주했다. 2000년에 발매된 5집은 김흥국 선배님이 라디오에서 발음을 실수해 이슈가 되기도 했던 Cyber Lover가 타이틀곡이었지만 후속 곡 Tonight이 더욱 오랫동안 노래방에서 많은 사람들에게 불리며 사랑받기도 했다.

 

5집 역시 히트음반이 되었고 마지막 앨범까지 터보는 단 한번도 성공하지 않은 적이 없는 그룹이 되었다. Tonight이라는 잔잔한 노래를 끝으로 터보의 제작사와 종국이의 계약기간이 끝났고 그 당시 소속사는 다른 회사와 합병을 하면서 여러가지로 변화의 과정을 거치던 중이었다. 새로운 소속사로 옮겨 종국이는 솔로 음반을 발매했고 변하지 않는 보컬실력으로 발라드 음악계에서도 승승장구하게 되었다.

 

터보, 엔진이 꺼지다

 

터보의 여정에서 나는 2집 노스트라다무스, 바람의 철학, Love is, 3집 금지된 장난, 회상, 오버센스, 4집 X, 애인이 생겼어요, 기도, 첫사랑, 5집 D.D.R, Cyber Lover, Tonight 을 작업했고 터보와 나와의 그리고 터보와 대중들과의 인연은 여기까지이다.

 

터보의 노래는 90년대 아이돌그룹 중에 아직까지 오랫동안 불려지고 각종 클럽에서도 자주 흘러나오고 있지만 그들이 함께 서는 무대는 볼 수 없었다. 그래서 최근 무한도전에서 기획된 토토가와 그 여파로 열린 공연들에서 볼 수 있는 그들의 함께인 모습이 더욱 더 감격스러운 게 아닌가 생각한다. 아직 공식 재결합 소식은 없지만 종국이가 평소 멤버들을 꾸준히 챙겨오고 있고 최근 무대까지 함께 하는 그들을 보면 '혹시나...'하는 기대를 저버릴 수 없는 것이 사실이다.

 

종국이는 국내에서는 잘 알려지지 않고 있는 사실이지만 중국에서 그야말로 대형스타가 되어있다. 또한 각종 예능에서 종횡무진 활동하고 있고 음악에 대한 큰 열정도 여전하다. 김정남과 마이키 역시 음악과 무대에 대한 그리움과 배고픔이 간절하다고 전해들었다.

 

가끔 전화기를 통해 여전한 종국이의 목소리를 들으면 나 역시도 그때로 돌아간 것 같은 착각이 든다. 상황이 바뀌었고 자리도 변화가 생겼지만 우리의 20대에 함께 그린 터보는 영원히 잊혀질 수가 없는 것이다.

혹시 누가 알겠는가? 윤일상 작곡의 터보 무대가 2015년 혹은 2016년에 발표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