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윤일상의 가요 Talk10 #10 서편제
DATE : 2015.09.30

원본 컬럼 링크: http://ch.yes24.com/Article/View/29062


내 생애 처음으로 도전했던 창작 뮤지컬 <서편제>

마지막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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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가면 갈수록 중압감은 더 해갔지만 정말 멜로디 하나가 나오지 않았다. 대본은 5고 6고로 넘어가고 있는데 뮤지컬에 음악이 없다니 말이 안될 일이었다. 모든 스텝들은 초조해 했고 나 역시 하루하루 피가 말랐다. 서편제는 창작을 하는 사람을 미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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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만남

 

평소에 알고 지내던 조왕연 대표님으로부터 뮤지컬 이야기를 하자고 연락이 왔다.

 

"서편제를 창작 뮤지컬로 올리려고 해요. 제 평생 꿈이에요.
작곡가는 윤일상 씨 외에는 생각해 본 적이 없어요."

 

뮤지컬은 그 전에도 몇몇 곳에서 이야기가 있어 왔지만 좋은 창작 뮤지컬을 기다리느라 고사를 했던 터였는데, 무려 '서편제'라니... 그 중압감에 당황스럽기도 하고 왠지모르는 흥분감에 복잡 미묘한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길지 않은 시간에 결정을 할 수 있었는데 무엇보다 뮤지컬 작품을 하나도 해 보지 않은 나에 대한 조왕연 대표님의 무조건적인 믿음과 음악으로 표현 되어지는 모든 예술 행위를 해 보고싶은 평소 내 의지와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다.

 

그렇게 서편제 최초의 스태프는 나와 조왕연 대표님, 둘로 시작되었고 다음 만난 스태프는 이지나 연출님과 조광화 작가님이었다. 야무진 입매에 미소를 띄며 총총히 걸어오던 이지나 연출님의 모습은 범상치 않았고 자리에 앉은지 얼마 되지않아 한마디를 툭 던졌다.

 

"아니~ 돈도 잘 버는 오버그라운드의 최고 작곡가가 왜 누추한 뮤지컬계에 들어오려고 하실까~?"

 

웃으면서 한 말씀이었지만 초면에 듣기엔 다분히 독한 말이었다.물론 나는 웃으면서 예전부터 뮤지컬이 하고 싶었노라고 서편제라 더욱더 의욕이 생긴다고 이야기하며 넘겼다. 이제와 생각해 보면 그 만큼 쉽지 않으니 단단히 준비하라는 깊은 뜻이 있는 이야기가 아니었나 싶다. 조광화 작가님은 그와는 반대로 부드러운 카리스마가 그윽하신 분이셨다. 사람좋은 표정과 웃음으로 이야기를 하셨지만 작품 이야기에 집중 하실 때에는 매서운 눈매로 돌변했다.

 

그리고 송화......!

 

이자람을 만났다.

 

자람이는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수 많은 소리 공연을 해오며 이미 국내외에서 그 실력을 인정 받아 오던 소리꾼이다.

 

소리에 관한 이야기에 자람이는 내가 써야할 곡의 뮤즈가 되어 주었다. 바로 옆에서 자람이가 소리를 하면 나는 즉흥적으로 음악을 만들어 갔고 그렇게 스케치된 음악은 '서편제' 넘버의 모태가 되었다. 심청가, 억척가... 10m 안쪽에서 들려오는 자람이의 찢어질 듯 내뿜는 소리는 내 가슴을 매 순간 뒤 흔들어 놓았다.

 

그 다음 만난 송화는 차지연. 커다란 키에 시원시원한 보컬이 인상적이었던 차지연의 첫인상 역시 강렬했다. 이자람이 소리에 기반한 내 음악들의 뮤즈가 되어 주었다면 차지연은 팝 넘버들, 이를테면 "살다보면" 같은 곡이 나올 수 있게 영감을 준 뮤즈이다.

 

"그저 살다보면... 살아진다..."

 

그리고 다음 스태프로 음악감독까지 자타공인 국내 최고의 김문정누나로 결정 되었다.

제작 회의가 계속 지속되고 대본은 매일 수정되어 갔다.

이젠 정말 나만 곡을 잘 쓰면 되는 일이었다.

 


2. 작업

 

"이미 많이 그려진 도화지에 새로운 그림을 누가 그리고 싶겠는가?
또 누가 못 그리겠는가?
(마음속 깊숙히엔) 그렇다면 그건 얼마나 재미없는 일인가!

 

서편제는 ...
도화지 자체가 없는 작품이었다.

 

최소한 곡을 만드는 내게는 그랬다."
-서편제 작품해설지 작곡가 인사말 중-

 

서편제의 작업을 시작하고 세 달이 넘게 단 한 곡도 나오지 않았다.
일부러 다른 작업까지 캔슬 시켜가며 집중했는데 평소 나 답지 않은 일이 일어난 것이다.

 

첫 공연은 다가오고 있었고 나는 해외 뮤지컬 넘버 이상의 작품을 만들고 싶어서 안달이 나 있었다. '엔드루 로이드 웨버 (Andrew Lloyd Webber)의 작품 같은 명곡을 만들어야 해~!'  시간이 가면 갈수록 중압감은 더 해갔지만 정말 멜로디 하나가 나오지 않았다. 대본은 5고 6고로 넘어가고 있는데 뮤지컬에 음악이 없다니 말이 안될 일이었다.모든 스텝들은 초조해 했고 나 역시 하루하루 피가 말랐다.

 

서편제는 창작을 하는 사람을 미치게 했다.

 

그러던 어느날 “Phantom of the opera” 초연 배우들의 기념작을 보았다.  공연이 끝나고 초연 배우들이 서로 손에 손을 잡고 기쁨과 감동의 눈물을 흘리던 장면을 보며 생각했다.

 

'수많은 세월 동안 많은 이들이 보았고 많은 배우들이 연기했을 저 작품의 처음은 어떠 했을까?


최초로 저 작품을 만든 "엔드루 로이드 웨버 (Andrew Lloyd Webber)”는 어떤 생각과 감정으로 시작했을까? 그들의 처음은 어떠 했을까?' 단 하나의 음표도 써 내려가지 못한 내 자신에 대한 증오심이 극에 달할 때쯤 오페라의 유령 초연배우들의 공연은 내게 이런 생각을 할 수 있도록 도왔다.

 

'그래, 나는 이걸 지구상에서 최초로 하는 거야.
누구를 넘어서려 하는것도 말이 안되는 일이며 그 누구를 따라 하는것은 더더욱 용납할 수 없어.
나만이 할 수 있는, 서편제만이 낼 수 있는 소리를 처음으로 만들어 보자. 

 

뮤지컬이라는 장르 자체가 없는 시대라 상상해 보자. 연극과 음악만 있는 시대에 새로운 형식, 더구나 우리의 소리까지 더해진 세계 최초의 형식을 만들어 보자."

 

그렇게 생각하니 정말 마음이 편해졌고 내 어께를 짓누르던 돌덩이들도 하나씩 내려갔다. 그리고는 난 3-4일만에 7여곡을 내리썼다.

 

"드디어 곡이 나왔어요."

 

창작스텝들을 모두 내 작업실로 초대했고 '살다보면', '심청가', '한이 쌓일 시간' 등 여러 넘버들을 들려 주었다. 그런 긴장감이 또 있었을까 싶다. 난 음악을 시사하며 스태프들의 얼굴조차 바라보지 못한 채 등을 지고 앉아 있었다. 한곡 한곡 곡이 끝날 때마다 박수와 여러 칭찬의 말들이 내 등 뒤에서 들려왔고 그 날의 마지막 곡이 끝난 후엔 기립박수로 내 작품에 대한 인사를 해 주었다.

 

스태프들은 내게 자신감을 더욱 더 불어 넣어 주었고 그렇게 시작된 작업은 쉴새 없이 계속되었다. 대본이 바뀔 때마다 나는 머릿속에 그려진 것들을 수정해 나가며 또 다른 신곡 작업에도 착실히 매진했다. 곡 작업과 편곡 작업 그리고 수정 작업을 매일 밤 홀로 해가며 나는 몇 번을 병원 신세를 지기까지 했다.

 

'서편제'라는 작품은 그 자체로 정말 기가 쎈 작품이다.

 

'원망'이라는 곡 작업을 할 때였다. 송화가 눈이 머는 그 장면은 정말 가슴을 쥐어 뜯을 정도로 고통스러웠다. 그 곡을 쓸때는 정말 밥 한 숟가락 들 힘도 없이 맥이 빠져 있었는데 그 어떤 일도 포기를 몰랐던 내 입에서 한숨 섞인 말이 나왔다.

 

'너무 힘들어... 포기할까...'

 

식탁에 앉아 한 숨을 쉬며 고개를 숙이던 내게 아내가 얘기했다.

 

"여보, 난 전 곡이 다 당신 노래인 뮤지컬 작품이 탄생하면 정말 감동적이고 기쁠것 같아요. 상상만 해도 설레요. 조금만 힘을 내 보면 안 될까요?"

 

아내의 그 말이 마지막까지 내게 힘을 주었고 나는 한곡 한곡 작곡과 편곡을 마무리 지어갔고 내 작업실은 백여장에 이르는 악보로 가득했다. 그렇게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 같던 작업이 끝나갔고 공연 날은 하루하루 다가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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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서편제 막을 올리다

 

드디어 연강홀에서 열린 서편제의 첫 공연.

 

흥행은 실패했다.

 

심지어 10명 남짓된 관객만으로 공연 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그 때마다 배우들은 더 열심히 해서 10명이던 100명, 1000명의 관객이든지 간에 늘 기립박수를 받아 내었다. 일단 공연을 보러 온 관객들은 모두 다 감격해하며 좋아했지만 서편제라는 이름이 주는 중압감은 일반 관객들에게는 상당히 크게 느껴지는 듯 했다.

 

주위 지인들에게 내 생애 첫 뮤지컬 작품인 '서편제'의 관람을 보러 오도록 종용했지만 그들은 온다 온다 하며 발걸음을 옮기길 힘들어 했다. 서편제 하면 왠지 국악이 중심이된 창극의 형식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컸다고 한다. 심지어 '서편제'라고 하면 누가 보러 오냐는 말까지 하는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어떤식으로든 공연에 온 사람들의 관람 후 반응은 똑 같았다.

 

"내 생에 최고의 작품이야! 정말 감동적이야."

 

뮤지컬 서편제는 팝넘버의 음악들이 90% 이상이고 거기에 우리의 소리가 자연스레 녹아있는 작품이다. 그러므로 아직 관람하지 않는 관객분들은 편안하게 손수건 한장 가지고 오시면 색다른 체험을 하시게 되시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렇게 흥행에는 실패했지만 그 해 더 뮤지컬 어워드의 9개부분에 노미네이트 5개부분을 수상하며 작품성을 인정받게 되었다.

 

첫 공연이 그렇게 흥행에 실패하자 최초로 공연을 기획하셨던 조왕연 대표님의 정제사정이 상당히 나빠지셨다. 결국에 공연제작을 더이상 본인이 할 수 없는 지경에까지 이르렀고 제작사는 오넬컴퍼니로 넘어갔다. 여러 상황에 비관하신 조왕연 대표님은 급기야 최악의 선택까지 하시고 말았다.

 

서편제의 두번째 공연 세번째 공연 시작과 막공때는 언제나 어김없이 비가 내렸다.

 


4. 서편제의 미래

 

모든 작품은 자기들의 생명력을 스스로 갖는다고 믿는다.

우리 서편제도 마찬가지이다.


첫공이 올라가기 전부터 수 많은 진통이 있었고 매 공연때 마다 여러 가지 사건 사고들이 있었던 작품이었지만 그 생명력이 언제까지 갈지는 정말 아무도 모른다. 현재 제작관련 이슈로 물음표가 많은 시기이지만 반드시 원상복귀 시켜서 빠르면 내년, 늦어도 후년부터 더욱 더 활발하게 이어 질 수 있으리라고 믿는다.


크리에이티브 스태프들은 이 문제에 관해 의견을 수시로 교환하며 노력하고 있고 곧 그 결과가 나와 줄 것이다.

 

거기에 토석이 되는것은 바로 대중들의 관심이다. 서편제를 관람하신, 그리고 감동을 느끼신 분들이라면 지속적인 관심으로 기대심을 확산시켜 주십사 부탁드리고싶다.
결국 좋은 작품은 좋은 관객 없이는 완성되지 못하니까.

 

"쇼는 계속 되어야 한다!"

 

 

<칼럼을 마무리 하며>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 <윤일상의 가요Talk 10> 과 함께한 독자분 들께 이 자리를 빌어 큰 감사를 드립니다.
앞으로도 저는 좋은 작품으로 여러분들을 찾아 뵐 수 있도록 혼신의 노력을 다할 것이며 언제나 여러분들 곁에 함께하는 작곡가의 한사람으로 남을 것 입니다. 가내 평온하시길 바라며 건강하고 행복한 하루하루 되시길 바랍니다. 여러분, 모두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