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 해변의 여인, 애상, 점포맘보, 해석남녀, 진실, 보고보고, 이 여름Summer' 그리고 최근 작업한 '안녕들한가요?' 까지...... '운명' 이후 쿨 정규음반의 타이틀곡은 언제나 나의 몫이었다. 올해로 20년 차가 된 장수그룹 쿨. 그러나 그 첫만남은 '마지막 앨범'이라는 이야기로 시작되었다. 편집.jpg ⓒ 윤일상홈페이지(http://www.ilsang.com/) 여름이면 나오는 팀 한 제작자로부터 연락이 왔다. '쿨'이라는 팀의 신곡 작업을 의뢰하기 위해서였다. 당시 제작자는 '이번에 안 되면 해체하려 한다.'는 말로 대화를 시작했다. 두 번째 앨범의 타이틀곡이었던 '슬퍼지려 하기 전에'라는 곡은 사실 당시에는 큰 히트곡은 아니었기에, 이 그룹을 계속 끌고가기에 힘이 딸리는 느낌이 있다고 했다. 나는 그럼 내 방식대로 쿨을 해석해서 작업해도 되겠냐고 물었고 제작자는 흔쾌히 그 제안에 응했다. 쿨의 안무 클립을 보며, 평소 순수한 느낌을 표현할 수 있는 가수를 만들고 싶던 나의 바람을 현실화시킬 수 있는 그룹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새로운 쿨을 만들기 위한 작업에 착수했다. 모 건물에서 처음 만난 그들은 다소 풀죽은 것 같은 어두운 색채감이 느껴졌는데, 나는 그들에게 하얀색, 푸른색의 밝은 색채를 입히고 싶었다. 이전에는 듣지 못했던 유리의 카랑카랑하면서도 귀여운 목소리와 재훈이의 부드러운 톤, 성수형의 재밌고 개성있는 캐릭터를 살려내기 위해 최선을 다해 작업을 진행했다. 실제로 유리가 부를 '운명'의 샤우트성 보컬을 위해 녹음 전 여러 가수의 샘플을 들려주며 부단히 연습을 시켰다. 처음에는 본인이 처음 해 보는 보컬 스타일에 쑥스럽고 어색해 하더니 이내 샘플로 들려준 보컬을 넘어서 자기만의 색깔로 소화시키기에 이르렀다. 그렇게 '운명'이 세상에 나왔고 쿨은 운명처럼 큰 사랑을 받으며 수주 간 차트 정상에 머물렀고, 1위 소감에 가장 고마운 사람으로 나의 이름을 불러 주기도 했다. 참 고마운 일이다. 스텝으로서 시상식이나 1위 소감에 이름이 불려진다는 것은 시청자나 다른 사람에게는 스쳐 지나가는 일이겠지만 그 당사자에게는 보람을 넘어 큰 감동이 되는데, 유독 쿨은 방송에서뿐만 아니라 시상식 이후에 따로 전화까지 하며 고마움을 표해주었다. 다음 앨범은 쉼없이 바로 들어갔다. 여름을 겨냥한 앨범이었고 나는 내심 쾌재를 질렀다. '여름이면 나오는 팀'을 만들고 싶었기 때문이다. 미국의 '비치보이즈'나 일본의 '튜브'같은 팀이 우리나라도 있었음 했고 제작자나 멤버들에게도 이런 나의 소망을 이야기했다. 이전 앨범의 성공에 탄력받은 쿨은 '해변의 여인' 역시 큰 히트를 기록했고 그 앨범 후로 쿨은 그야말로 여름이면 나오는, 여름이면 기다려지는 팀이 되었다. 하마터면 없었을 곡 '애상' '운명'과 '해변의 여인'으로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고 다음 앨범 '애상', '변명' 작업을 시작할 때만 해도 사실 나는 멤버들과 일 이외의 별다른 관계가 없었다. 그저 작곡가와 가수 사이로 만났고 그들에게 나는 언제나 어려운 존재였다. 당시 나는 데모작업을 할 스케쥴이 안 될 정도로 바빴기 때문에 '운명'과 '변명'의 작업도 녹음실에서 악기를 풀면서 시작되었다. 나의 가이드가 전해지고 가사가 나오고, 드디어 노래 녹음날이 왔다. "노래 연습 많이 했어?" 수줍게 앉아있는 유리에게 얘기했다. 유리는 "많이는 못했어요..."라며 다소 풀죽은 목소리로 내 눈치를 보며 말했다. 그런데 연일 밤샘녹음에 지쳐있던 나의 예민함은 이 말을 지나치지 못했다. "뭐? 내 노래를 연습을 안 하고 녹음하러 왔다고? 그럼 하지 마!" 나는 짐을 휙 둘러메고 그대로 녹음실을 나와버렸다. 스케쥴로 아무리 힘들어도 내 노래를 충분히 연습하지 않고 녹음실에 온다는 건 '당시의 나'로서는 용납이 되지 않았다. 사실 유리는 밤새 보컬 연습을 해왔음에도 내 앞에서 긴장된 나머지 많이 못했다고 말한 것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웃으면서 넘어갈 수 있었을 텐데 그때의 나는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그렇게 냉정하게 나와버린 내 뒤로 성수형이 바로 따라 나왔다. "일상아 정말 미안해. 이렇게 가버리면 어떡해. 나를 봐서 한번만 이해해줘." 성수형의 착한 얼굴과 울먹이는 목소리에 마음이 풀어졌고, 심지어 무릎까지 꿇으려는 그를 보며 그렇게 돌아설 수는 없었다. 난 다시 녹음실로 들어갔고 풀 죽어 있던 유리와 재훈이에게 얘기했다. "너무 예민하게 반응해서 미안해....신나고 밝게, 재미있게 해보자." 그렇게 멤버들과 내가 쿨의 노래 중 가장 좋아하는 곡으로 꼽는 '애상'의 녹음이 시작됐다. 그때 함께 작업하는 가수와의 인간적인 교감이 더 필요함을 절실히 느꼈고 그날 이후부터는 사적인 자리도 종종 가지게 되었다. 이렇게 완성된 '애상'은 몇 해 전 나의 21주년 음반에 10센치가 불러서 다시 한번 주목을 받으며 그 해 가장 오래 차트에 머문 곡으로 선정되기도 하였고, 최근 토토가 열풍과 함께 또 한번 차트에 등장하며 꾸준한 사랑을 받고있다. 쿨, 그리고 음악 쿨은 유난히 오래가는 음악이 많은 팀이다. 거기에는 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앞서 이야기했던 멤버 각자의 보컬적인 특색이 큰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특히 재훈이의 목소리는 아무리 반복해서 들어도 쉽게 질리지 않는 편안한 멜로우 보이스의 소유자고 유리와 성수형 역시 그에 못지 않는 개성을 지녔다. 녹음 시에 여느 팀보다 훨씬 더 즐겁고 밝은 마음으로 임하기에 그런 현장의 분위기가 고스란히 녹음으로 투영되어 리스너들에게도 오랜 편안함으로 함께하는 것 같다. 특히 성수형의 녹음은 정말 독특하게 진행된다. 물론 나의 가이드를 듣고 미리 곡 분위기와 라임, 플로우를 익혀오라고 한 후에 녹음을 진행하지만, 성수형의 최종녹음 버전은 성수형의 그날의 끼로 완성된다. 성수형은 틀에 맞추어 찍어내는 것이 아니라 '이런 느낌이니까 자유롭게 해봐'라고 요구하면 순간적인 아이디어를 수십 트랙 쏟아낸다. 수많은 곡의 녹음을 진행할 때마다 그야말로 녹음실은 웃음바다가 되었는데 그 Take들 중에 지나치지 않고 적절한 것으로 최종녹음을 정리하는 것이다. End, and... 쿨은 그야말로 승승장구했다. 매년 여름이면 나와서 차트를 휩쓸었고 그 인기는 실로 어마어마했다. 요즘 같았으면 아마도 실시간 차트 줄 세우기를 하고도 남았을 것이다. 평소 그들은 건전한 레저를 즐기며 특히, 여름에 특화된 레포츠를 앞서 즐기고 전파시키는 데 앞장섰다. 음악도 생활도 언제나 밝은 느낌을 전파하던 쿨. 그러다 여러가지 이유로 팀 내에 크고 작은 불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소속사에 관한 개인적인 크고 작은 갈등이 있었고 결국엔 '이여름summer'를 마지막으로 긴 겨울잠에 들어가게 된다. 최근 '안녕들한가요?'는 쿨의 곡으로 섭외 받고 작업했지만 재훈이 혼자 불러서 발매가 되기도 했다. 유리의 결혼과 출산으로 이제 원년멤버 그대로 다시 무대에 설 수 있을지는 미지수로 남게 되었다. 정리하며 아직도 여름이 오기 전 난 버릇처럼 쿨의 곡을 쓴다. 재훈이의 감성적인 보컬과 유리의 귀여우면서 개성있는 보이스톤, 그리고 팀내 조미료 역할을 하며 곡의 재미를 더해주는 성수형의 랩. 이 셋의 조합은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환상적인 융합이다. 공식적인 해체도 없었고 아직까지 공연으로 많은 사람들과 호흡하고 있는 그들이기에, 간절히 원하면 이루어지듯 언젠가 완전체 쿨이 다시 무대에서 호흡을 맞출 수 있는 날이 오기를 나는 아직도 기대한다. 그리고 매해 여름 기다린다. 쿨이 새로운 날개짓을 할 수 있기를...... '굿바이 나의 친구야. 굿바이 지난 날들아. 웃으며 떠나는 건 이별이 아냐. 다시 꼭 만날 테니.'